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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자연을 박제하는 사람: 마크 디온의 예술적 탐험기, Mark Dion

by artnlove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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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디온: 예술가이자 의사(擬似) 과학자

마크 디온(Mark Dion, 1961~ )은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전통적인 조각가나 회화 작가로 분류되기보다는 ‘탐험가이자 수집가, 큐레이터이자 생태학적 사유자’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는 과학, 박물학,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방법론을 차용해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과 ‘지식의 제도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탐구해 왔다.

디온은 미시간 주 뉴 베드포드에서 태어났고, 하트포드 아트스쿨(Hartford Art School)과 미국 예술아카데미(American Academy in Rome)에서 수학했다. 그가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인간 중심적이고 소비적인 자연 관에 의문을 던지는 설치 작업들을 선보이면서부터였다. 그는 종종 과학자나 탐험가의 외양을 한 채, 특정 장소에서 발굴을 하거나 조사 작업을 수행하고, 그것을 박물관 전시 형식으로 보여주는 전략을 택한다. 이때 그는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이나 박물관 전시가 사실은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 서사임을 드러낸다.

디온은 자신의 작업을 "제도적 비평(institutional critique)"의 연장선상에 두고 있지만, 그 접근은 냉소적이기보다는 유희적이고 탐구적이다. 그는 과학적 권위를 비판하는 대신, 그것을 ‘놀이의 형식’으로 재현하고 해체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과 '믿음'의 경계를 질문하게 만든다.


대표작: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

디온의 대표작 중 하나인 〈Tate Thames Dig〉(1999)은 템즈강 강변에서 수집한 다양한 유물, 쓰레기, 생물 표본 등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로, 과학적 발굴과 박물학적 분류의 방식을 빌려온 작품이다. 그는 런던 시민들과 함께 실제로 강변을 탐색하고, 그 안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탐사 기록’처럼 정리하여 설치함으로써, 고고학적 실천의 신뢰성과 박물관의 권위를 유머러스하게 비틀었다.

또 다른 대표작인 〈Cabinet of Curiosities〉 시리즈는 16세기~17세기의 ‘호기심의 방(Wunderkammer)’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에서 디온은 진열장 속에 자연물, 인공물, 장난감, 인형, 동물 뼈, 모형 등을 무작위적으로 배열하면서, 인간의 수집 욕망과 분류체계의 자의성을 드러낸다. 특히 그는 이러한 ‘수집된 자연’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가 얼마나 인위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인지를 암시한다.

그 외에도 그는 〈Mobile Wilderness Unit〉이나 〈The Library for the Birds of New York〉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관계를 실험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박물관과 도서관, 연구소 등 제도적 공간을 모방하면서도, 그 안에 함몰된 가치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취한다.


예술과 생태의 경계에서: 마크 디온의 현재적 의의

마크 디온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을 넘어 생태학, 인류학, 과학철학 등의 접점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가 지속적으로 주목해 온 것은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고 구조화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에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자, 새로운 자연관을 요청하는 시각적 제안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디온은 생태 미술(eco-art)의 흐름 속에서도 중요한 작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는 환경운동가로서의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인간의 지식체계와 자연 사이의 관계를 문화적, 제도적 차원에서 질문함으로써 더 복합적인 논의를 가능케 한다. 그는 예술이 단지 ‘아름다운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를 구성하고 해체하는 비판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마크 디온의 작업은 박물관, 공공 미술 프로젝트, 생태 연구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과 예술, 인간과 자연,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오늘날, 마크 디온의 작업은 우리가 어떤 ‘자연’을 믿고, 또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전시하고 소비하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Blood Coral, 2019 cast resin and assorted items on wooden crate207 x 67.3 x 43.2 cm
Theatrum Mundi (Cosmological Cabinet), 2018 wood cabinet, glass vitrines106.7 x 106.7 x 25.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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