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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무너진 문장 위에 쌓은 조각, Michael Dean

by artnlove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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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태어난 조각가 – 마이클 딘의 출발점

마이클 딘은 1977년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났으며,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순수미술 학사 학위를 2001년에 취득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거리의 언어, 개인적 경험, 그리고 도시 하부문화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딘은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조형 시스템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는 초기부터 책, 복사물, 인쇄물 등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인쇄물 조각(Print Sculptures)’이라는 독자적인 조각 형식을 탐색했다. 이 시기의 작업은 복사기에서 뽑은 텍스트를 구기거나 말아 붙인 후 콘크리트와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접근은 조형과 언어의 관계에 대한 그의 깊은 질문을 드러냅니다.

딘은 대체로 ‘거리의 언어(street language)’와 구어체’에 집중합니다. 그는 하층민의 말투, 욕설, 불완전한 문장, 무의미한 반복 등에 주목하며 그것을 조각적 오브제로 변형시킵니다. 그의 언어는 정치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하며, 모호한 해석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깁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조각화된 언어의 경험”이라고 말하며, 관람객이 조형물을 ‘읽고’, ‘걷고’, ‘해석하는’ 신체적 경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재료의 물성과 조각적 언어

딘의 작업에서 재료는 단순한 조형적 수단을 넘어서, 언어 그 자체로 기능합니다. 그는 주로 콘크리트, 쇠막대, 문서 인쇄물, 쇠사슬, 그리고 심지어 지폐나 동전 등을 사용합니다. 그의 재료는 대부분 도시의 일상에서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며, 이를 통해 그는 조각이 엘리트적인 미술 언어가 아니라 생활 속의 감각을 담아내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딘의 대표작 중 하나인 United Kingdom Poverty Line 시리즈에서는, 영국의 공식 빈곤선 기준 금액(1인 하루 생활비 기준)을 동전으로 환산해 쌓아두고, 그 위에 콘크리트와 언어 조각을 결합합니다. 이 작업은 빈곤의 추상적 수치를 물리적 존재로 시각화하며, 경제와 조각, 언어와 삶 사이의 간극을 조형적으로 드러냅니다. 동전 더미를 세밀하게 쌓아 올리는 행위는 마치 숫자와 통계 뒤에 숨은 인간 존재를 드러내는 퍼포먼스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딘의 조각은 단순한 시각적 기념물이 아닌, 문명과 삶, 언어와 계층을 둘러싼 조각적 텍스트로 기능합니다. 관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읽기를 멈추지 못하며, 동시에 조형의 추상성과 물성의 직접성 사이를 오갑니다.


말할 수 없는 언어, 조각할 수 없는 말

마이클 딘의 가장 독특한 점은 그가 ‘언어를 조각한다’는 점 입니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통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비문법적이며 탈구조적인 글자, 기호, 왜곡된 타이포그래피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는 때로 자신의 언어체계를 직접 고안해 내며, 관람객은 그것을 해독하거나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언어는 딘에게 있어 단순한 의미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조각의 연장선입니다.

이러한 실험은 특히 그가 출간하는 책 형태의 작업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는 실제 책을 인쇄하여 전시 공간에 배치하거나 구겨진 책 뭉치를 조각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책들은 종종 읽히기 어렵게 구성되며, 일부러 인쇄 오류나 비틀림을 의도적으로 포함시킵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언어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느끼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딘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조각을 통해 언어의 육체를 만들고, 언어를 통해 조각의 감각을 연다.”
이러한 선언은 그가 말과 몸, 의미와 형태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딘의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 조각을 넘어서,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해석해야 하는 언어적 공간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텍스트를 말이 아닌 물성의 조각으로 읽게 하고, 조각을 시각이 아닌 언어의 느낌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시도입니다.

 

Garden of Delete, 2021
Having you on, Installation view, 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Gateshead, UK,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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