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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 선들, Nisha Keshav

by artnlove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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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샤 케샤브의 사진은 ‘보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는 풍경을 단지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고,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투영된 지형으로 바라봅니다. <풍경 속 선들>은 그녀의 예술적 시선이 응축된 작업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을 가시화하고, 그 안에서 사람과 자연, 시간 사이의 관계를 풀어냅니다.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케샤브는 찍힌 것을 넘어서, 느껴지는 것을 사진에 담아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시처럼 조용하고, 회화처럼 깊으며, 삶처럼 느리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그녀의 선을 따라가며 어느덧 풍경의 가장 안쪽에 이르게 됩니다.

 

선(線)이 말을 걸어오는 풍경

니샤 케샤브의 사진은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특히 그녀의 전시 **<풍경 속 선들 (Lines in the Landscape)>**은 풍경이라는 익숙한 대상을 통해 감각의 선을 가시화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선’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경계이자 연결이며 구조이자 흐름입니다. 그것은 곧 풍경과 인간 사이의 감정선이기도 합니다.

이 전시에서 케샤브는 영국의 홀름 펜(Holme Fen)이라는 습지 지형을 1년간 촬영하며,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순환을 시각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영국 내에서 가장 낮은 지점 중 하나로, 자연과 인간의 흔적이 얽혀 있는 장소입니다. 작가는 그곳의 식물, 나무, 공기, 빛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며, 보이지 않는 선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의 사진은 선을 따라 걸어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르는 선, 지면 위에 드리운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흐름은 단순한 장면이 아닌 자연이 말하는 언어입니다. <풍경 속 선들>은 풍경을 ‘응시’하는 것을 넘어서 ‘경청’하게 합니다. 이 선들은 무심한 자연의 일부가 아닌, 풍경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옵니다.

빛의 뒤편에 숨겨진 이야기들

니샤 케샤브의 작업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그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비치는 순간에 나타나는 감정과 기억의 층위를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그녀의 포트레이트와 도시 공간 프로젝트들에서도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피터버러 지역과 함께한 Treasured People & Possessions, Opening Doors to Hidden Heritage와 같은 프로젝트는 지역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기억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케샤브는 인물의 얼굴을 정면으로 담기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오래된 건물,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 삶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그녀에게 있어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매개입니다. 그녀는 그림자 속에 숨겨진 감정을 놓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속에서 삶의 깊이를 탐색합니다. 이러한 시선은 <풍경 속 선들>에서도 이어집니다.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장면, 빗물에 얼룩진 유리창, 이끼 낀 돌담 위의 빛 반사는 모두 삶의 찰나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렌즈는 항상 ‘그 너머’를 보고자 합니다.

시간을 얼려 담은 정물의 시

니샤 케샤브의 스튜디오 작업은 그녀의 사진 세계가 확장되는 또 다른 장면입니다. 얼음 속에 식물을 가두고, 그 변화의 과정을 담아낸 정물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을 응축한 실험입니다. 얼음은 일시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지닌 재료로,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사라져 감을 암시합니다.

그녀의 정물 사진 속 꽃과 식물은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유기체로 등장합니다. 얼어붙은 꽃잎, 얼음 속 공기방울, 서서히 번져가는 물의 결은 사물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게 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지 아름다운 이미지를 넘어, 사진이라는 평면 위에 시간과 감정의 층을 쌓아 올립니다.

이러한 시선은 <풍경 속 선들>에서도 지속됩니다. 자연 풍경 역시 결국에는 시간의 정물입니다. 계절의 흐름, 공간의 변화, 빛의 각도는 모두 시간이 만들어낸 조형입니다. 케샤브는 그것을 정적인 풍경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대화’하려고 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The Fragility of Lines
Pylons in Fen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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