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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를 조각하다, Shauna McMullan

by artnlove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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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una McMullan의 작업은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지닌 예술입니다. 그녀는 대형 구조물이나 시각적 충격에 의존하지 않고, 섬세한 손길로 언어와 기억, 관계와 장소를 연결하는 감성적 조각을 만들어냅니다. 그녀의 예술은 말해지지 않았던 것들을 말하게 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게 하며, 잊혀가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그녀가 만들어낸 작품은 단지 물질로 이루어진 조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 생각, 경험이 응축된 하나의 공동체적 형상입니다. 특히 여성들의 말, 손글씨, 삶의 단편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선 사회적 제안이며, 감정의 정치학에 관한 시적 선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시대 속에서 McMullan의 예술은 멈춰 서서 듣고, 기록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조각들은 단순한 물질을 넘어서, 언어의 기억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그녀의 손을 거쳐 세상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새겨집니다.

속삭임의 지도: 여성의 목소리를 수집하는 예술

Shauna McMullan은 말과 글, 몸짓과 기억이라는 비물질적 매체들을 조형 언어로 전환시키는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작업은 개인의 서사이자, 공동체의 기억을 구축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며,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시각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업이 《A Woman’s Words》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100명의 여성에게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장을 손글씨로 써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도자기 재료로 하나하나 조각한 설치 작품입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글귀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손글씨를 섬세하게 조형하여 여성들의 ‘말’과 ‘존재’를 물질화한 시도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무형의 언어가 조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 과정을 “조용한 조각(silent sculpture)”이라고 부릅니다.

그녀의 예술은 단순한 조형 작업에 그치지 않고, 구술사나 구체적 사회 맥락, 심지어 정치적 기억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여성성과 기억, 그리고 장소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는 ‘말’이라는 것을 하나의 역사로, 조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시간 속을 걷는 문장들: 장소에 새겨진 기억

McMullan의 또 다른 주요한 축은 ‘장소’입니다. 그녀는 특정 장소에 깃든 기억과 흔적을 조형적 언어로 재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The Line of Thought》 시리즈에서는 도보와 걷기를 통해 지역의 지리적, 역사적, 정서적 기억을 수집하고 이를 선으로 시각화합니다. 여기서 선(line)은 단순한 궤적이 아니라, ‘사유의 선’, ‘기억의 선’으로 기능합니다.

작가는 직접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몸의 리듬, 공간의 기운들을 스케치북에 선으로 남깁니다. 이 선들은 이후 그녀의 드로잉, 조각, 텍스트 설치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현장 조사’가 아닌, 장소에 대한 감각적 사유와 감정의 흔적을 담은 조형적 기록입니다.

특히 그녀의 작업에서는 ‘느린 관찰’이 중요한 미학적 전략으로 드러납니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와 정보 과잉 속에서 그녀는 손으로 적고, 걷고, 만지고, 쓰는 행위를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합니다. 이로 인해 McMullan의 작품은 매우 사적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지극히 감각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흩어진 말의 조각들: 예술로 직조한 연대의 언어

Shauna McMullan은 예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조직합니다. 특히 그는 여성들의 말, 이주자들의 기억, 지역 공동체의 서사들을 엮으며 ‘공공적 조각’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기념비가 아니라, 나지막이 존재하는 감성의 기념비입니다.

그녀가 조각하는 글자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삶의 파편이자 목소리입니다. 이것은 ‘예술가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함께 만든 서사’로 보아야 합니다. 그녀의 작업실은 늘 열린 상태이며, 참여자들의 이야기, 손글씨, 감정들이 작품의 중심이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McMullan의 작업이 하나의 ‘공공 기억 장치’로 기능하게끔 합니다.

그녀의 작업에서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완벽하거나 화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실’하다는 점입니다. 말은 종종 지워지고, 침묵은 무시되지만, 그녀는 그것을 조각으로 떠올려 공간에 심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감정과 목소리들을 예술이라는 매체로 ‘붙잡는’ 행위입니다.

McMullan은 말합니다. "이 작품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입니다." 이 한 문장에서 그녀의 예술 윤리와 철학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조각이라기보다, 하나의 서신이며, 공기 속에 흩어진 연대의 시(詩)입니다.

 

Travelling the Distance /2005–2006 /porcelain /H 360 x W 420 x D 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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