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Nash의 작업은 단순히 나무를 깎는 조형 활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시간과 장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확장된 조각 개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는 손으로 형태를 만드는 대신, 자연이 형상을 빚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관찰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찾아냅니다.
Nash의 조각은 그래서 생태적 사유의 조형화이며, 자연과 예술,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느린 예술의 실천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느리고 조용한 예술은 빠른 소비와 생산에 익숙한 현대사회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대화 – 목재를 매개로 한 조형 철학
David Nash(1945– )는 영국 웰즈(Wales) 출신의 조각가로, 자연을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협업자이자 동반자로 여기는 독특한 시선을 가진 예술가입니다. 그는 조각 재료로 금속이나 돌이 아닌, 나무를 일관되게 선택해 왔습니다. 특히 인간의 손이 닿기 전의 자연 그대로의 목재, 즉 고사하거나 쓰러진 나무, 뿌리가 붙은 채 죽은 나무 등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그는 자연이 만들어낸 형상과 흔적을 해치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그 안에 숨겨진 조형성을 끌어냅니다.
도끼, 전기톱, 불과 같은 원초적인 도구들은 그가 자연에 ‘개입’하되, 지배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는 "자연은 스스로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따라갈 뿐이다"라는 태도로 작업에 임합니다. 이런 점에서 Nash의 조각은 단지 조형 예술을 넘어서, 생태적 감수성과 윤리를 반영한 조형 언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자연 협업형 작업인 〈Ash Dome〉(1977~)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자작나무 22그루를 원형으로 심고, 수십 년에 걸쳐 이들이 자라며 돔 형태를 이루게 했습니다. 이 작품은 단 한 번의 완성된 조형물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생장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 행위가 되는 사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나무들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조형적 실천으로 읽힙니다.
시간과 변화 – 유기적 조각의 실현
Nash의 작업은 그 결과물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과정 자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는 조각을 ‘완성된 오브제’가 아니라, 유기체와 같은 존재로 보고, 그 변화의 흐름을 적극 수용합니다. 예를 들어 목재 조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축하고 갈라지며, 내부 수분이 증발하면서 형태가 변형됩니다. 또한 일부 작품은 불에 그슬리거나 태워져서 자연적 소멸과 재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예술가로서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집니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과정 중심적 작업(Process Art)'이나 '생태 예술(Eco-Art)'의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특히 조각을 옮기거나 이동시키는 과정 자체도 기록으로 남기며, 이 또한 작품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어떤 작품은 설치 후 몇 년간 환경의 영향을 받아 부패하거나 구조가 변화한 뒤에도 그 기록이 전시되거나 아카이빙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조각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대하며, 인간이 자연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시간과 함께 조각을 완성해 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의 조각은 그래서 늘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고, 변화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장소특정성과 공동체적 감각 – 지역과 호흡하는 예술
David Nash의 작업은 종종 특정 장소를 위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조각으로 확장됩니다. 그는 작업을 위해 임의의 전시장이나 갤러리 공간보다는, 숲, 들판, 마을의 언덕이나 공터 등을 선호하며, 그곳의 지형과 식생, 역사, 지역 사회의 맥락을 고려해 작업을 구성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거주하고 작업해온 웰즈의 작은 탄광 마을 Blaenau Ffestiniog은 그의 예술적 실천이 지역사회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마을 주변에는 그의 조각들이 자연 속에 숨듯이 존재하며, 주민들은 그것을 산책 중 마주치거나 기억 속 장소로 삼는 등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적 시선은 단순한 조형 예술을 넘어선, 예술과 삶의 통합이라는 더 큰 틀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술이 박물관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며 생각하고 느끼는 **‘살아 있는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공 미술의 측면에서도 그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여러 도시와 자연공원에서 그의 대형 조각은 지역의 상징이 되었고, 환경과 예술, 공동체의 연계를 이끌어내는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