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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저것!, Emile Kirsch

by artnlove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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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

Emile Kirsch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문학적 배경 위에 예술적 감수성을 쌓아 올린 독특한 작가이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ENSCI-les Ateliers(프랑스 국립 산업 창작 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며 본격적인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Kirsch는 문학과 디자인이라는 상이한 영역을 오가며, 사물에 대한 깊은 탐구와 언어적 직관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독창적인 미학을 구축해 왔다.

그의 초기 작업은 사물의 기원, 존재 방식, 그리고 인간과 사물 간의 내면적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Kirsch는 특히 '둥지(nest)'라는 구조에 매료되었는데, 2015년부터 새의 둥지를 관찰하며 형성과정과 재료의 조화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지혜를 탐구해 왔다. 이는 이후 그의 조형 작업과 오브제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찰력은 곧 Tim Ingold의 인류학적 사유, 그리고 Andrea Branzi의 비평적 디자인 철학과도 교차하게 된다.


둥지에서 배우는 창작의 언어

Kirsch의 대표적인 연구 주제는 바로 '둥지'다. 그는 이를 단순한 새의 거처로 보지 않고, ‘구성(composition)’과 ‘형태 생성(form generation)’의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시적인 표현으로 이해한다. Kirsch에게 있어 둥지는 불완전함과 우연성, 기능성과 조형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 구조다. 이 복합성은 그가 사물을 다루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완결된 형태보다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상태에 주목하며, 자연스러운 불균형과 정교한 거칠음을 탐구한다.

이러한 접근은 Hermès의 실험적 작업장인 petit h와의 협업에서도 두드러졌다. Kirsch는 이곳에서 버려진 자투리 소재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벗어난 새로운 창작 방식을 실험했다. 그에게 있어 ‘재료’는 단순히 조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는 존재이며, 디자이너는 그것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다. 이는 그가 실천하는 ‘경청의 디자인’으로,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협업의 윤리

Emile Kirsch는 개인 창작뿐 아니라 다양한 협업을 통해 예술적 실천의 폭을 넓혀왔다. 특히 콜롬비아의 지역 장인들과 함께한 프로젝트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협업은 단순한 형태의 교환을 넘어서, 지식과 기술, 삶의 방식에 대한 교류를 동반하는 '공동 창작'이었다. 그는 지역 장인들과의 협업에서 단순히 그들의 기술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함께 만드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Kirsch는 예술가란 '모호한 영역에 머무르며, 예기치 못한 것을 끌어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디자인과 예술, 공예와 철학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경계를 무화시키는 방식으로 창작을 실천한다. 이러한 유연함은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변주 가능성을 열어주는 새로운 예술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오늘날 예술가가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고, 지속 가능한 재료와 관계를 맺으며,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제안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힐 수 있다. Emile Kirsch는 예술이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의 형성 과정’ 임을 몸소 실천하는 작가이다.

 

Emile Kirsch <Ta, Da, C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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