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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형태, Robert Smithson

by artnlove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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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스미슨은 짧은 생애 동안 예술의 지형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인물입니다. 그는 대지미술을 통해 인간의 문명이 처한 엔트로피의 조건을 성찰했고,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공, 시각과 개념을 넘나드는 새로운 예술 언어를 개척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장소의 정치성과 예술의 존재론을 다시 묻는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나선형 궤적은 단지 소금호수 위에 그려진 하나의 조형물이 아닌, 예술이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궤적이자, 끝없는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의 메아리입니다.

소금 호수 위의 나선 — Spiral Jetty와 엔트로피의 시학

로버트 스미슨의 대표작 Spiral Jetty(1970)는 대지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이 거대한 나선형의 제방은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 호수에 설치되었으며, 현무암, 진흙, 소금 결정 등을 이용해 지름 약 460미터 길이로 조성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물과 땅, 자연과 인공,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미슨은 이 작품을 통해 자연 현상, 특히 ‘엔트로피’ 개념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물리학에서의 엔트로피, 즉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자연의 법칙을 미학적 개념으로 전유했습니다. Spiral Jetty는 처음 설치 당시에는 물 밖으로 드러났지만, 그 후 수면 상승으로 수년간 물에 잠겼고, 시간이 지나며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 가시성과 비가시성, 드러남과 숨겨짐의 순환은 작품 자체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끼게 합니다.

스미슨은 이 작업을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시간, 지질학적 변화, 역사적 층위가 겹쳐진 복합적 사건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는 영화로 이 작업을 기록했고, 글쓰기와 사진, 지도 등을 통해 Spiral Jetty를 하나의 ‘확장된 서사’로 구성했습니다. 이처럼 스미슨의 예술은 조각이라는 장르를 해체하고, 공간과 시간, 언어와 시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 매체적 실험으로 나아갑니다.


 엔트로피의 조각가 — 시간과 붕괴에 대한 미학적 사유

로버트 스미슨은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완전히 탈피한 인물입니다. 그는 조각이 “기념비적이고 영속적인 형태를 가진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대신 소멸, 붕괴, 침식, 침잠 같은 부정형적 과정을 작품의 핵심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는 그의 ‘사유의 조각’ 개념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글 「엔트로피와 새로운 모뉴먼트」에서 "고대 문명들이 피라미드 같은 기념비를 남겼다면, 현대 문명은 오히려 소멸을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반기념비입니다. 대표적으로 Partially Buried Woodshed(1970)은 나무 창고 위에 흙을 쌓아 무너뜨린 설치작업으로, 붕괴의 순간을 작품으로 고정시킨 실험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미학은 당시 미니멀리즘이 강조하던 절제된 구조, 기하학적 질서, 물성의 명료성과는 거리를 둡니다. 대신 그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흔적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예술을 생산하려 했습니다. 그는 예술이 단지 시각적으로 감상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되고 체험되는 것임을 주장하며, 조각을 하나의 ‘생각의 매체’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탐험, 기록, 지도 제작, 영화 촬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확장시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술은 공간 속에 고정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분해되고, 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사변적 사건이 됩니다.


지도 밖으로 떠나는 사유 — 사이트와 논사이트, 예술의 지리학

스미슨은 ‘장소성’(site-specificity)에 대한 개념을 예술적으로 정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술 작품이 단순히 미술관이라는 ‘화이트 큐브’ 공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자연적 맥락사회적 지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구체화한 개념이 바로 ‘사이트(site)’와 ‘논사이트(nonsite)’입니다. ‘사이트’는 작품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 환경을 뜻하며, ‘논사이트’는 그 장소에서 가져온 재료(돌, 흙 등)나 이미지, 기록을 미술관에 재배치한 작업을 의미합니다. 스미슨은 이 두 개념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며, 작품이 단지 눈앞에 있는 오브젝트만이 아니라, 그것이 속한 지리적, 문화적, 개념적 맥락 전체를 포함한다는 새로운 예술 언어를 제안했습니다.

그의 Nonsite 시리즈는 이를 시각화한 예시로, 컨테이너 안에 지역에서 채집한 암석이나 흙을 넣고 지도나 설명 패널을 병치하여, 관람자에게 ‘장소의 단편’을 전달합니다. 이는 물리적 경험을 공간적 상상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이자, 예술을 통한 공간 감각의 확장입니다.

스미슨에게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과 물질, 역사와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 층위였습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이러한 층위를 가시화하고,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는 그가 지향한 예술이 단지 ‘보는 것’이 아닌, ‘이해하고 존재하는 방식’ 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Robert Smithson, Spiral Jetty  (1970) Great Salt Lake, Utah Mud, precipitated salt crystals, rocks, water 1,500 ft. (4
Robert Smithson,  Mirror Displacement: Indoors (Tree from Langenfeld, Germany)  (1969) [destroyed] Created for  Prospect 69  at Kunsthalle Düsseldorf, Germany  Tree, mirrors  Dimensions variable, approximately 20 feet long Photograph: Camillo Fischer, Stadtarchiv Bonnident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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