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라지는 조각, Andy Goldsworthy

by artnlove 2025. 4. 12.
반응형

앤디 골즈워디의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자연과의 접촉’을 예술을 통해 회복시키려는 시도입니다. 그의 작품은 거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과 일시성 속에서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처럼 잠시 세상에 스며들었다가 사라질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예술은 그런 존재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말없이 들려줍니다.

바람의 손길로 쌓은 조형 — 찰나의 조각들

앤디 골즈워디는 영국 출신의 대지미술가로,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바탕으로 자연 그 자체에 작품을 되돌려 놓는 예술가입니다. 그가 다루는 재료는 돌, 얼음, 낙엽, 나뭇가지, 꽃잎, 진흙, 눈과 같은 자연의 일상적 요소들입니다. 그는 이 재료들을 직접 손으로 모으고 조작해 일시적인 설치물을 만든 후, 사진을 통해 그 순간을 기록합니다. 골즈워디의 작업은 대부분 하루 안에 사라지거나, 기후 변화에 따라 붕괴되고 녹으며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과정은 ‘완성’이라는 개념을 전복시킵니다. 그의 예술은 형태의 정형성과 보존보다 변화와 소멸의 과정을 오히려 작품의 본질로 삼습니다.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Rowan Leaves and Hole, Icicle Star, Rain Shadow 등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낙엽이나 얼음 등을 나선, 원형, 별 모양으로 배열해 자연 속에서 인위적인 질서를 잠시 불러오며, 그 자체로 시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특히 Rain Shadow는 작가가 비가 오기 전 바닥에 누워 자신의 몸의 실루엣을 남긴 뒤 비를 맞고 떠나는 작업입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몸의 그림자가 마른 채로 남겨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마저도 비에 젖어 사라집니다. 인간의 존재와 자연의 무상함, 시간과 흔적의 관계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골즈워디 특유의 감성적 접근입니다.


흐름과 구조의 만남 — 자연을 꿰매는 손

앤디 골즈워디의 작업은 즉흥적이지만 동시에 치밀하게 구성된 구조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연의 구조와 흐름을 깊이 관찰하고, 그것에 스며들듯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강가에서 모래와 진흙으로 만든 구 형태나, 조약돌로 만든 나선형 패턴, 얼음 덩어리를 정교하게 이어 붙인 결빙 조각 등은 모두 자연의 리듬을 따라가되 그 안에 인간의 정제된 손길이 가미된 형태입니다.

그는 종종 “자연이 만드는 구조와 내가 만드는 구조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해 가는 과정”을 작품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그는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조형 감각으로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인간 고유의 리듬을 덧붙이는 예술을 실천합니다.

작업을 위해 그는 자연 속을 오랜 시간 걷고 관찰하며, 마치 의식과도 같은 반복적 행위를 수행합니다. 얼음 조각을 잇기 위해 손이 얼어가며 작업을 계속하거나, 바위 위에 낙엽을 하나하나 배열하기 위해 바람과 싸우는 그의 모습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수행자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시각적 결과를 넘어서, 물리적, 정신적 헌신을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 가까운 예술입니다.

 


남지 않는 조각, 머무는 기억 — 기록과 흔적의 미학

골즈워디의 작품은 대부분 자연 속에 머물다 사라지기 때문에, 결과물로서의 조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사진을 통해 작업을 기록하며, 그 사진이 곧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이때의 사진은 단순한 다큐멘테이션이 아닌, 예술의 한 형식입니다. 그는 조명, 시간, 각도까지 철저히 계산해 사진을 찍음으로써 찰나의 예술을 영원성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병행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그가 예술을 영속성보다는 ‘기억과 흔적’에 기반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남기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인식을 그의 작업은 조용히 들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관객에게 깊은 감정의 파동을 안깁니다. 아름다움 속에 서늘한 무상함이 깃들고, 자연의 질서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은은하게 배어납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자연 속에 잠깐 스며들 뿐이다. 자연은 나 없이도 여전히 그것의 길을 간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자연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 자신을 녹이는 태도를 취합니다.

 

 

Sticks framing a lake, 1986.
Ice Spiral, 198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