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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그린 선 어둠이 남긴 길, Time Knowles

by artnlove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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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놀스의 작품은 예술과 자연, 인간과 환경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실험이며, 관람자로 하여금 ‘보는 방식’과 ‘존재 방식’ 자체를 되묻게 합니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자연과 함께 그리는 작가의 초상

팀 놀스(Tim Knowles)는 영국 출신의 현대 미디어 아티스트로, 자연의 힘과 물리적 현상에 기반한 작품을 통해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자연 현상과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끌어들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놀스는 기존의 예술 창작 방식, 즉 작가의 의도를 중심으로 완성되는 결과물에서 벗어나, 자연의 힘이나 외부 환경이 창작의 주체가 되는 형식을 택합니다. 그는 ‘작가로서의 개입’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면서도, 그 경계를 실험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습니다. 예술가가 단지 창작자가 아닌, 자연 현상을 드러내는 ‘조력자’ 혹은 ‘기록자’로서 역할하는 그의 태도는 동시대 예술계에서도 실험성과 독창성 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다수의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전통적인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야외 환경, 도심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도 수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예술을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유도하며, 기술, 과학, 환경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우연과 움직임이 남긴 기록들 

팀 놀스의 대표작들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자연 현상을 기록하는 드로잉 시리즈, 환경과의 즉흥적 행위로서의 퍼포먼스, 그리고 시간과 움직임을 시각화하는 사진적 실험입니다.

① 나무 드로잉(Tree Drawings)

이 시리즈는 그의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군 중 하나입니다. 놀스는 나뭇가지에 펜을 부착한 후,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종이에 그려지는 선을 기록합니다. 이 드로잉은 일종의 ‘자연의 자필 서명’이라 할 수 있으며, 매번 다른 날씨 조건, 나무의 종,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주도하는 창작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② 윈드워크(Windwalks)

‘윈드워크’는 팀 놀스가 바람의 방향을 따라 걷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작업입니다. 그는 머리에 바람개비 형태의 풍향계를 착용하고, 바람이 이끄는 방향으로만 걸으며 그 경로를 GPS로 추적합니다. 도시 공간이나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이 행위는 인간의 자율적 움직임을 배제하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경로의 지도는 그 자체로 작품이 되며,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지형에 흔적을 남기는 시각적 기록물이 됩니다.

③ 나이트워크(Nightwalks)

이 작업은 어둠 속에서 빛을 이용해 인간의 움직임을 시각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놀스는 달빛 없는 밤에 강력한 손전등을 들고 길을 걷고, 이 과정을 장시간 노출 촬영으로 기록합니다. 결과물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빛의 선들로, 마치 ‘빛의 드로잉’처럼 보입니다. 이 시리즈는 시간, 움직임, 공간이 어떻게 결합되어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작업입니다.


시간과 자연이 만든 예술의 무게

팀 놀스의 작품은 현대 예술에서 중요한 몇 가지 주제를 탁월하게 시각화합니다. 첫째는 자연과의 협업적 창작입니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단순히 관찰하거나 재현하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연을 창작의 동등한 주체로 끌어들입니다. 이는 예술가의 ‘창의성’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재해석하게 합니다.

둘째는 우연성과 비결정성의 미학입니다. 놀스는 바람, 빛, 움직임처럼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작업에 개입시킴으로써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듭니다. 이는 계획 중심의 창작 방식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며, 예술에서의 ‘통제 불가능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상기시킵니다.

셋째로, 그의 작업은 시각적 기록을 통한 새로운 지각을 유도합니다. 자연이나 인간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등은 원래 비가시적인 존재이지만, 놀스는 이를 드로잉,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관람자에게 익숙한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은 예술과 과학, 환경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실천이기도 합니다. 기상학적 도구나 GPS, 사진 기술 등을 활용하는 그의 작업은 과학적 방법론과 예술적 표현이 조우하는 지점에 서 있으며, 이는 예술이 타 분야와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Larch (4 pen) on Easel #1 , The How, Borrowdale, Cumbria, 2005. Above: C-Type print; below: ink on paper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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