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 Bove는 재료의 본질에 도전하고, 형태의 모호함을 수용하며, 시선과 의미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조각은 조형 언어의 ‘불확실성’을 통해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관객은 그 앞에서, 단단한 물질이 품고 있는 유연한 서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곧, 조각이 단순한 대상이 아닌 ‘생각하는 몸체’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Carol Bove의 조각 언어 – 유기성과 인공성의 공존
Carol Bove(1971년생)는 스위스 출신이지만 미국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 조각가입니다. 그녀는 미술사, 철학, 페미니즘, 모더니즘 디자인 등 폭넓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시각적으로 조형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특히 1960~70년대의 미니멀리즘 미술과 컨셉추얼 아트에서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된 입체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Bove의 조각은 종종 강철, 알루미늄, 콘크리트, 유리 등 견고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그것을 유연하게 구부리거나 압축한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재료의 고정된 성질에 도전합니다. 이는 전통적 조각의 중량감과 견고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부드럽게 구겨진 금속’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녀는 이 과정을 “시적인 왜곡”이라 표현하며, 물질에 내재된 가능성을 탐색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조각, 공간, 시선의 구성 – '기호로서의 조각'
Bove의 작품은 단순히 사물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의 상호작용과 배치, 그리고 관람자의 움직임까지 고려한 '설치적 조각'입니다. 그녀는 종종 자신이 만든 형태들을 반복하거나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여, 하나의 조각군(sculptural ensemble)을 구성합니다. 특히 철제 구조물 사이에 위치한 유리, 거울, 자연물(조개, 나무 등)은 시간성과 비물질성을 암시하며, 조각이 단순한 물질의 응집이 아니라 시적 해석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에서 선보인 그녀의 작업은 고전적인 조각 언어를 현대적으로 뒤틀어 놓은 대표 사례입니다.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마치 직조된 천처럼 구겨져 있는 형상은, 물질의 위엄을 무너뜨리고 그 안에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장치는 단순한 형상 너머의 상징성을 품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여성성과 형식 실험 – 현대 조각의 새로운 좌표
Carol Bove의 작업은 종종 페미니즘적 시선으로도 해석됩니다. 그녀는 여성 조각가로서, 남성 중심의 미니멀리즘 계보를 비틀며 그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대립 구도가 아니라, 기존 문법을 흡수하면서도 그것을 ‘우아한 왜곡’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그녀의 작품이 자주 '관능적'이고 '유기적'인 이유는 여기서 비롯됩니다.
또한 Bove는 '기호'와 '재현' 사이를 오가며, 형상 자체가 담고 있는 상징성에 주목합니다. 그녀는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하거나 과거 미술사에서 차용한 모티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시각적 연상 작용을 유도합니다. 예컨대 단단한 철판을 유연하게 구부린 형태는 여성의 몸, 고대 조각, 또는 자연적 생명체처럼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다중적 의미는 조각이라는 장르를 훨씬 풍부하게 만듭니다.
Bove는 또한 꾸준히 작품을 공개된 장소에 설치하며, 예술이 일상 공간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의 야외 설치 조각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서, 도시 환경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조각이 단지 미술관 안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