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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피어난 자리, 유화수

by artnlove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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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수의 예술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선 ‘사회적 사유의 장’입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우리가 외면했던 존재들을 호명하고, 주류 서사에 균열을 내며, 익숙한 기준을 흔드는 감각적 장치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화려함보다는 조용한 감각에 의존하며, 감상보다는 참여를 유도합니다.

‘잡초’가 자라는 자리, ‘몸짓’이 반복되는 공간, ‘손’이 닿은 흔적들은 모두 유화수의 예술 안에서 하나의 언어가 됩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소외된 존재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마주한 관객의 감각과 윤리를 되묻습니다. 유화수의 예술은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시 묻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언입니다.

조형의 손끝에서 시작된 시선

유화수 작가는 동국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며 조형예술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조각적 재료와 방법론을 익혔지만, 점차 ‘형태를 만드는 일’보다는 ‘무엇을 주목하고 어떤 관계를 드러내는가’에 초점을 둔 작업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예술에 있어 ‘형상’보다 ‘의미’가, ‘재현’보다 ‘조명’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그의 작업 전반을 지배합니다.

그가 예술을 매개로 다루고자 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가려진 존재들, 말해지지 않는 목소리, 무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현상들이 그의 작업의 주된 대상이 됩니다. 예술가로서 유화수는 ‘주류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풍경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형화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2013년 개인전 《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이 전시에서 그는 드라마 세트장을 만드는 장인들의 노동 현장을 기록하고, 그들이 만든 구조물과 흔적을 재구성하여 전시장으로 옮깁니다. 이는 단순한 ‘직업’의 재현이 아니라, 주류 미디어 뒤편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손들’의 서사를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잡초, 기계, 몸짓 

유화수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설치들은 물리적 장치(농기계, 센서, 조명, 자동화된 구조 등)를 통해 사회적 은유를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일관된 전략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잡초의 자리》(2021)와 《재배의 몸짓》(2023)을 들 수 있습니다.

《잡초의 자리》는 스마트팜 기술을 이용해 ‘잡초’를 키우는 실험적 작업입니다. 일반적으로 ‘제거 대상’으로 분류되는 잡초를 첨단 기술로 키운다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우리가 효율성과 생산성 중심의 세계에서 무엇을 ‘쓸모 있음’ 혹은 ‘쓸모없음’으로 판단하는지를 되묻습니다. 유화수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술이 배제하는 생명은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재배의 몸짓》은 제23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업으로, 생태와 노동, 기술 사이의 불균형을 집중적으로 다룬 설치 작품입니다. 전시 공간 안에는 자동화된 장치들이 반복적인 움직임을 수행하며 식물을 돌보는 듯하지만, 그 움직임은 단절되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반복됩니다. 이 장면은 기술의 표면적 효율성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정성과 인간 소외의 감정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유화수는 작품 속 ‘몸짓’을 중요한 조형 언어로 활용합니다. 반복되는 노동의 몸짓, 기술에 의해 대체된 신체의 움직임, 장애인이 수행하는 일상의 제스처 등은 그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문장들’입니다. 그는 그것들을 주의 깊게 수집하고 전시장에 배치함으로써 하나의 공공적 언어로 전환시킵니다.


주변부의 존재를 응시하는 일 

유화수가 지속적으로 주목해 온 존재들은 공통적으로 ‘경계에 선’ 이들입니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년층, 잡초, 폐기물, 장인의 손길, 기술에 대체된 신체 등은 모두 주류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밀려나거나, 효율성과 정상성의 기준에 의해 평가 절하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는 이들을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 방식, 생존 전략, 혹은 자신만의 리듬을 하나의 ‘미학’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찾아냅니다. 이는 예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질문을 던지고 감각을 전환하는 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유화수는 또한 ‘연결’을 중요한 예술적 개념으로 다룹니다. 소외된 존재들을 예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행위는 단지 그들을 대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외된 존재들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그 간극이 만들어낸 사회 구조의 문제를 조망하게 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기계 장치나 환경적 구성물은 이처럼 사회적 분리와 연결, 제거와 포용이라는 이중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그의 예술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우리는 무엇을 중심이라 말하고, 무엇을 주변이라 치부하는가? 우리의 일상에서 배제된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가, 혹은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예술은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조정할 수 있는가?

 

<재배의 몸짓>/ 2023 /스마트팜 시스템, 느티나무, 버섯, 목련, 아카시아나무, 진동모터, 센서, LED /가변크기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2021/혼합재료/330x150x1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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